[젠슌] 지구 최후의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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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0

 

 

KPC 슌도 쥰페이　PC 슌도 하루오

 

 

Written by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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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언제쯤 우주로 가게 될까?

 

 

하루오는 천천히 눈을 뜹니다.

 

 

환한 빛이 망막을 투과 하자 익숙한 대피소 내부가 보입니다.

 

 

곧 차가운 기온이 하루오의 피부에 내려 앉습니다.

 

 

방 안은 정적입니다.

 

 

쥰페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조금 전 까지 자리에 있었던 쥰페이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쥰페이의 물건들.

 

 

요즘 그가 읽던 책.

 

 

하루오와 쥰페이가 만들어낸 조약하지만 가득 찬 공간이 보입니다.

 

 

...

 

 

언제 잠이 들었던걸까요?

 

 

슌도 하루오:(시린 손 위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는다. 괜스레 빈 자리가 허전해 그가 읽던 책의 표지를 눈으로 흝고 기억을 더듬어본다. 지난 밤 곧바로 잠에 들었던가?)

 

 

몇시 쯤 잠들었더라...

 

 

기억에 의존하다 보면

 

 

오래 잠들어 있었던 것 처럼 눈꺼풀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몸은 가볍습니다.

 

 

마치 겨울잠을 잔 것 처럼.

 

 

겨울잠을 자기에는 봄이 찾아오지 않을 시대죠.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일찍 잠들었던 것만 같습니다.

 

 

슌도 하루오:(나는 곧 봄인데도 말이다. 가벼운 기지개와 함께 몸을 일으킨다. 대피소 내부를 둘러본다.)

 

 

하루오가 누워있는 대피소 한쪽 벽은 지진과 해일.

 

 

충격을 버티기 위한 고강도 특수 강화 유리로 제작 되었습니다.

 

 

투명한 유리 안에서 보이는 밖은 전부 새하얀 눈에 파묻혀 있습니다.

 

 

지구 전체가 얼음 같은 추위에 잡아 먹혀 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대피소 방 안은 어지럽습니다.

 

 

탁자에서 떨어져 있는 책들.

 

 

커피 자국이 남아 있는 컵, 일정한 속도에 맞춰 깜박이는 전등...

 

 

아마 쥰페이는 곧 돌아올겁니다.

 

 

그 전에 추위에 적응이라도 할 겸 방을 치워두는게 낫겠습니다.

 

 

하루오와 쥰페이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계속 이 대피소를 집으로 삼아 살아가게 될 테니까요.

 

 

슌도 하루오:(잠시나마 홀로 남겨지니 적적함만 가득해져선.) 나도 참 주책이지... (작게 중얼거리며 허리를 굽힌다. 바닥에 나뒹구는 책들을 정리해간다. 무슨 책들이지?)

 

 

전부 우주 과학에 관련된 책들입니다.

 

 

그 외에도 탁자 위에는 오래된 신문들과 물 컵.

 

 

전등이 눈에 띕니다.

 

 

신문은 정말 오래 되었습니다.

 

 

인쇄 된 글자 대부분이 지워졌고 알아 볼 수 있는 거라고는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하는 단어들 몇 개가 전부입니다.

 

 

우주선. 기상. 인구. 수용. 생존률...

 

 

남아 있는 단어들은 어떠한 집합도 가지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슌도 하루오:(아무래도 타지 못한 기차에게 갖는 미련 같은걸까... 멋쩍게 입꼬리를 올리며 책들을 가지런히 탁자 위로 올려 놓는다. 낡은 전등을 살핀다.)

 

 

전등을 살피기 전 잠깐 단어들에 한 번 더 눈길이 갑니다.

 

 

✷　감정 혹은 예술 판정　✷

 

 

슌도 하루오:

감정

기준치:	5/2/1
굴림:	55
판정결과:	실패

 

 

이 신문은 어딘가 이상해보입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내용이 이상했나? 단어가 잘못됐나?

 

 

무언가 기시감이 들고 말 뿐입니다.

 

 

이어서 전등을 보면...

 

 

저녁이 되어 책을 읽을 때에 이 전등을 키곤 했었죠.

 

 

그나마 집에서 가져온 물건 중 하나입니다.

 

 

그 외에도 [유리창 밖]] [냉장고] [현관]을 볼 수 있습니다.

 

 

슌도 하루오:(그러니 아무리 낡고 빛이 점화하더라도 버리질 못하겠다. 쥰페이의 모습이 보이려나? 유리창 밖을 살핀다.)

 

 

창에 손을 대자 손톱 끝 부터 한기가 느껴집니다.

 

 

밖이 얼마나 추울지 상상이 가는 온도입니다.

 

 

지구를 덮은 이 눈이 바다이고, 산이고...

 

 

곧 하늘인 것처럼 눈은 지평선도 되고 수평선도 되는 것 같습니다.

 

 

어디가 바다인지 또 어디까지가 땅인지 구분 할 수 없습니다.

 

 

나무는 메마르고 가난한 채로 무거운 눈을 버티고 있습니다.

 

 

멸종의 시대가 다가오기 전 상상해봤던 인류의 멸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지구에 살고 있던 모든 생명체들은 추위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　관찰 판정　✷

 

 

슌도 하루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72
판정결과:	실패

 

 

생명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삭막한 겨울은 영원합니다.

 

 

그리고 낯설게 느껴집니다.

 

 

하루오가 살았던 과거의 지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버린 이 곳.

 

 

모두가 죽거나 도망쳤고 그 최후는 쥰페이와 하루오 역시 같을 겁니다.

 

 

창가 주변 의자가 보입니다.

 

 

의자에는 쥰페이와 하루오의 옷들이 아무렇게나 걸려 있습니다.

 

 

하루오가 쥰페이의 옷을 정리해주려고 하자 겉옷 주머니에서 작은 물건이 하나 잡힙니다.

 

 

슌도 하루오:(뭐지? 물건을 확인한다.)

 

 

이게 뭐지?

 

 

꺼내보면 무선 전파기기입니다.

 

 

초소형으로 제작 된 이 기계는 지구 주변을 이루고 있는 우주 상공 주파수를 미세하게 감지하고

 

 

그들이 보낸 신호를 지구의 언어로 변형 해 송출 시킬 수 있습니다.

 

 

슌도 하루오:(밖으로 간 사람들의 근황을 알 수 있을까? 전파기기를 이리저리 살펴본다. 최근 사용한 적이 있는걸까?)

 

 

사용감은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쥰페이가 종종 썼던 것 같기도...

 

 

슌도 하루오:(돌아오면 물어봐야겠다. 가볍게 여기며 주머니 속에 구겨 넣는다. 냉장고 안을 확인한다.)

 

 

방 안에 마련 되어 있는 냉장고는 실상 쓸모 없는 제품입니다.

 

 

대피소 안 온도는 영하를 웃돌고 있습니다.

 

 

쥰페이와 하루오가 먹고 마시는 음식들은 온도에 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쥰페이는 방 안에 냉장고를 가져다 두었습니다.

 

 

무슨 고집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냉장고 안에는 물 두 병과 단단하게 밀폐 포장 된 음식이 들어 있습니다.

 

 

술도 한 병 있습니다.

 

 

멸망한 지구에서 술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조금 웃기네요.

 

 

깔끔하게 정리된 냉장고는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이 더 많습니다.

 

 

...

 

 

슌도 쥰페이:깼어?

 

 

방을 정리한다는 명분으로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을 때,

 

 

하루오의 뒤에서 쥰페이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옷에 묻은 눈을 털며 현관에 서 있는 쥰페이의 모습은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없습니다.

 

 

협소한 현관에 쥰페이와 하루오의 신발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쥰페이가 달고 온 눈이 바닥에 떨어집니다.

 

 

슌도 쥰페이:(대강 옷을 털며) 아, 대피소 전망대에 다녀왔어. 절반 넘게 눈에 파묻혔어도 망가진 곳은 없더라... 다행이야.

 

(기색이 느껴지자 만면에 미소가 번진다. 아주 당연한 일인 것 마냥 네 앞에 다가서며 자연스레 아직 털어내지 못한 눈가루를 맨손으로 털어낸다.) 응, 오랜만에 푹 잠들었는데... 그래도 귀띔은 해주지. 옆에 없어서 놀랐잖아~

 

 

슌도 쥰페이:(너와 눈을 맞추며 따라 미소 짓는다. 맨손으로 털어내는 손길에 아차하며 네 손을 잡아 멈추게 했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추워. 손 얼겠다. (그저 걱정...) 네가 너무 잘 자길래, 깨우기 좀 그랬지. 다음에는 같이 가자.

 

(방 둘러보다가) 뭐하고 있었어?

 

 

슌도 하루오:(잡힌 손을 살살 풀어 깍지를 낀다. 찬 체온에도 아랑곳 않고 제 주머니에 넣는데, 네 물음과 동시에 딱딱한 물체의 감촉이 느껴진다. 아참...) 어수선하길래 정리좀 했지. 근데.. 이건 뭐야? 무전기?

 

 

슌도 쥰페이:(잠깐 놓았다가 금방 주머니에서 지니고 있던 핫팩 네 손에 쥐여준다. 그 위에 제 손까지 얹어 다시 깍지 꼈다가) 응? 아, 맞다. 놓고 갔었네. (...) 무전기. 외부랑 소통할 수 있대. 하루도 해보고 싶어?

 

 

슌도 하루오:(금세 따뜻해지는 손이 조금 움찔거린다. 작게 흘리듯 웃음 소릴 내더니) 음... 궁금하긴 해. 지금쯤 밖으로 나선 사람들은 어떻게 지낼까... 같은게 말야. (크게 개의치 않는 목소리다. 찬 행성에 남겨졌음에도 제 삶에 서리가 끼어들 틈새는 없었으니까.) 쥰은? 무슨 이야길 했는데?

 

 

슌도 쥰페이:하긴... 소식이 궁금하긴 하지. (네가 정리한 흔적을 훑다가 마지막으로는 제자리에 돌아온다. 저를 향한 시선으로.) 별 얘기 못 했어. 수신호가 잡힐 거라 생각해서 매일 붙들고 있긴 했는데... 언젠가는 잡히지 않을까... (작게 웃으며 말 끝 흐렸고)

 

 

대피소 전망대는 대피소와 조금 떨어져 있는 건물체입니다.

 

 

2년 전이었나요?

 

 

생존 인류를 태운 우주선이 지구의 중력을 이겨내고 도착지가 정해져 있지 않은 우주로 날아 간 날이.

 

 

전망대는 우주선에 타지 못한 잔류 된 인구가 우주로 향하는 우주선을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쥰페이와 하루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우주선에 타지 못했습니다.

 

 

우주선에 탄 채 새로운 지구.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 나선 인류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쥰페이와 하루오를 제외하고 지구에 남게 된 인류들은 모두 멸종했다는 사실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쥰페이와 하루오는 얼어붙은 행성에 남은 지구 최후의 인류입니다.

 

 

 

 

 

 

 

 

 

 

 

 

 

슌도 쥰페이:이번에는 동면 기기를 확인하러 갈거야. 같이 갈래?

 

 

절대 녹지 않을 지상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하루오에게 쥰페이가 묻습니다.

 

 

슌도 하루오:응! 같이 갈래. (단단히 옷을 챙겨입는다.)

 

 

슌도 쥰페이:(네게 제 목도리까지 둘러주고... 거의 패딩까지 벗어줄 기세)

 

 

동면 기기...

 

 

대피소 안에서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있었죠.

 

 

우주선에는 타지 못했지만 최후까지 지구에 남았던 사람들이 세운 이 대피소는 약 2천여명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택한 사람이 훨씬 더 많았지만 남은 인구 중 소수는 동면을 선택했습니다.

 

 

슌도 하루오:(뚱뚱해졌다.) 얼어죽기보다 쪄죽기가 먼저겠어! (목도리만이라도 돌려주며 걷는다.)

 

 

슌도 쥰페이:(뚱띠 하루... 아쉽... 다시 제 목에 두르고) 추우면 꼭 얘기해.

 

 

지구가 다시 생명의 땅이 되면.

 

 

눈과 얼음이 녹고 추위가 물러나면.

 

 

혹은 지구를 떠났던 생존 인구가 다시 이 행성에 돌아 와 남은 사람들을 전부 데려 갈 그 날을 위해 잠든 사람들.

 

 

대피소 지하에 누워있지만 마치 관 속에 들어간 것과 다름 없는 모습이라는 사실까지...

 

 

슌도 하루오:(문득 생각이 스친다.) 쥰은... 동면 기기에 들어가고 싶진 않았어?

 

 

슌도 쥰페이:...떠난 우주선이 반드시 돌아올 거라고 믿어. 지구가 고향이잖아. 난 그걸 보고 싶어서 남은 거니까 후회는 없어. 게다가 깨워줄 사람이 필요하다 해서 내가 해주기로 했는 걸. (...) 하루는? 바깥이 너무 춥지 않아?

 

 

슌도 하루오:쥰도 참 많이 변한거 알아? 옛날 같았음 이렇게... (미간을 잔뜩 좁힌다. 심통이난 못된 고양이같은 표정을 지어본다.) '제가 왜요?' 같은 이야길 했을텐데... (실실 웃는다. 돌아온 질문엔 짧은 간극이 이어졌다.) 나는...

 

추위정도는 괜찮아. 괜찮지만... 너랑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이 아쉬울 것 같았거든. 이렇게 지내는 것도 전원일기 같고 재밌지 않나? (농조)

 

 

슌도 쥰페이:... (못된 고양이 뭐지... 네 얼굴 빤히 보다가 못 말린다는 듯 웃음 터트린다.) 하루 덕분이지. 나서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있었으면 안 했다는 뜻..)

 

맞아, 네가 있어서 추위도 덜 해. 버틸 힘이 나. (이쪽은 진담)

 

 

쥰페이는 믿고 있습니다.

 

 

쥰페이와 하루오를 남겨두고 지구를 떠난 사람들이 쥰페이와 하루오를,

 

 

혹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남아 있는 인류를 데리러 올 거라는 사실을요.

 

 

그 기다림은 분명 외로웠을테지만 쥰페이의 옆에는 하루오가 있습니다.

 

 

그래서 괜찮았다고 합니다.

 

 

과거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걸어가며 마주 잡은 손이 따뜻합니다.

 

 

...

 

 

슌도 하루오:(그래서 이런 당신을 사랑한다. 눈웃음과 함께 평소와 다름 없는 목소릴 내었다.) 나도 그래. 네가 있어서 좋아.

 

 

― 36% … 57% … 88% … 관리자 확인 증명 되었습니다.

 

 

쥰페이가 가지고 있던 관리자 인식증을 문에 갖다 대자 생경한 기계음이 들립니다.

 

 

쥰페이를 제외하고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너무 오랜만입니다.

 

 

사람의 목소리를 닮은 것도 말이죠.

 

 

하루오는 쥰페이를 따라 동면실 안으로 들어섭니다.

 

 

고작 한 사람이 누울 정도로 좁은 동면 캡슐 6대가 누워있습니다.

 

 

동면실에 진입하자 온도는 더 내려갑니다.

 

 

슌도 쥰페이:조금 추울거야.

 

 

두꺼운 겉옷을 하루오에게 입혀주며 쥰페이가 말합니다.

 

 

슌도 쥰페이:못 견딜 것 같으면 말해. 방으로 돌아가면 되니까.

 

 

슌도 하루오:많이 추운데?! 더 붙어야겠다.. (농조로 중얼거리며 바짝 붙는다.)

 

 

슌도 쥰페이:(작게 웃고 너를 단단히 끌어안았다가 놔준다.) 더 안고 싶은데... 살펴볼 게 좀 있어서. 구경하고 있을래? 금방 올게. (눈치..)

 

 

슌도 하루오:이렇게 소중한 나만 두고 가는거야? (장난스레 꽃받침까지 하며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 그마저도 곧 '다녀와'라는 말과 함께 거두었지만.) 너무 추우면 적당히 보고 와! 기다릴게.

 

 

슌도 쥰페이:(정말 일 하기 싫다... 네 뺨을 쓰다듬으며 그런 생각을 하고 이어 쓰다듬던 곳에 짧게 입을 맞췄다가 떨어진다. 네게 옮은 것인지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곁에서 멀어진다. 짧은 인사도 덧붙이고) 진짜 다녀올게, 하루. (그래봤자 가까운 곳에서 돌아다니는 것이겠지만...)

 

 

곧 쥰페이는 동면 기기들을 하나 하나 확인하기 시작합니다.

 

 

동에 이상은 없는지. 기기 안에서 잠든 사람들의 건강 상태는 어떠한지…

 

 

✷　지능 판정　✷

 

 

슌도 하루오: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곳은 낯설지 않습니다.

 

 

동면실 안은 대피소 내부와 비슷하게 디자인 되어 있습니다.

 

 

합판 재질로 만든 벽과 옅은 베이지색 블럭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까지 다 알 것 같은 친숙함이 느껴집니다.

 

 

[동면 캡슐] [자료 보관함] [프로젝트 화면] [철제 문]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슌도 하루오:(일부러 이렇게 디자인한 걸까? 제 뺨을 문지르며 둘러보다... 프로젝트 화면을 확인한다.)

 

 

화면에는 둥근 지구의 현재 모습이 보입니다.

 

 

푸른 지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얼어 붙은 지구는 유일한 파란색을 잃고 눈으로 덮여있습니다.

 

 

지구 내 생명활동 감지를 나타내는 불빛은 모두 꺼져 있습니다.

 

 

기기가 고장났나 봅니다.

 

 

슌도 쥰페이:자. 이렇게 하면 … 반대편도 볼 수 있어.

 

 

어느새 다가온 쥰페이가 화면을 움직여주고 다시 제자리로 갑니다.

 

 

둥근 리모컨을 반대로 돌리자 대피소 내에 존재하는 두 개의 초록빛이 사라지고 지구 반대편이 나타납니다.

 

 

당연하게도 그곳에는 어떤 생명도 없습니다.

 

 

참담 할 만큼 차가운 온도와 얼어붙은 땅과 바다만 존재 할 뿐입니다.

 

 

슌도 하루오:(...정말 우리 둘 밖에 남지 않은걸까? 씁쓸함을 감출 수 없어 제 입매를 문지르길 몇 번. 자료 보관함을 확인한다.)

 

 

팔목보다 두꺼운 책과 서류들이 즐비합니다.

 

 

보관함에 자리를 잡고 있는 자료들은 이 지구에 남아있는 마지막 역사입니다.

 

 

과학과 우주에 관련 된 연구자료 부터 출간 된 책까지.

 

 

굉장히 많은 정보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워 보이는 책을 펼치자 ‘생명의 자손’ 이라는 [투박한 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슌도 하루오:(문구를 읽는다.)

 

 

핸드아웃 제공

 

 

✷　과학 판정　✷

 

 

슌도 하루오:

과학 Roll

기준치:	20/10/4
굴림:	61
판정결과:	실패

 

 

너무 어려워 읽지 못 하는 자료들도 있습니다.

 

 

동면 기기에 대한 사용법이 적힌 안내서도 있습니다.

 

 

안내서 앞에 표시되어 있는 동면 기기는 하루오가 동면실에서 본 것과 같아 보입니다.

 

 

슌도 하루오:(이게 다 무슨 말이지... 좋은 머리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글이 있다니! 한탄하며 동면 캡슐을 살핀다.)

 

 

걸음을 옮기기 전, 기기 사용 설명서에 눈에 띄는 문구가 들어옵니다.

 

 

― 인간의 비약적인 발전을 위해.

 

 

라는 글로 시작되는 설명서.

 

 

기기 장치를 다루는 방법과 긴급 상황시 대처 방법등이 적혀 있습니다.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온도에 얼어붙은 채 잠들어 있는 인간은 이렇습니다.

 

 

동면 기기는 지구에 남은 인류를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더 이상 추위와 병.

 

 

배고픔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동면 기기의 사용을 원했고 그들은 이 멸망한 행성을 떠나거나,

 

 

다시 살아 갈 그 날을 위해 죽음 대신 잠을 선택했죠.

 

 

동면 기기의 최적 작동 유효 기간은 약 400년.

 

 

쥰페이가 더 이상 동면 기기를 관리하지 못한다면 잠든 인류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

 

 

이어서 캡슐을 살피면,

 

 

성인 1명이 누우면 머리 끝 부터 발 끝 까지 모두 채워질 것 같은 크기를 가진 캡슐은 매우 협소해보입니다.

 

 

조금만 몸을 뒤척이면 캡슐 뚜껑에 이마를 부딪힐 것 같은 높이지만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캡슐 뚜껑으로 동면하는 인간의 얼굴이 보입니다.

 

 

슬쩍 바라 본 동면 인간은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들은 지구에 버려진 인간입니다.

 

 

죽음을 택하기 보다 불확실한 미래와 영원의 잠을 선택한 인간.

 

 

슌도 하루오:(어쩐지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하루오가 들여다 본 동면 캡슐 속 인간의 이름은 '제니(Jennie)' 입니다.

 

 

제니...

 

 

캡슐 속 인간을 바라보고 있으면 쥰페이가 하루오 옆으로 다가 와 어깨를 잡아 당깁니다.

 

 

슌도 쥰페이:여전히 살아있는 사람 같지는 않지? 난 우리가 동면을 선택하지 않은 게 잘한 일이라고 믿어.

 

 

슌도 하루오:...응 깊게 잠들다 못해 그다지 좋지 못한 일을 결정한 사람들 처럼 보이기도 해서. (으스스한 모습에 어깨를 부르르 털다 진정한다.) 일은 다 봤어? (네 뺨을 문지른다.)

 

 

슌도 쥰페이:(고개 얕게 끄덕이고는 네 머리 쓰다듬어) 응, 다 했어. 하루는 구경 다 했고?

 

 

슌도 하루오:(네 어깨에 머릴 부볐다.) 그럭저럭... 근데 내용이 어려워서 봐도 잘 모르겠더라. 이거 때문에 요즘 열심히 책읽던 거야?

 

 

슌도 쥰페이: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까 갑자기 우주가 궁금해져서.. 이것 때문도 있고. 나도 어려워서 읽다 말고를 반복해. 그보다 네가 모르는 게 있다니 놀라운데... (이런 말..)

 

 

슌도 하루오:그치? 나도 내가 모르는게 있어서 신기해.. 역시.. 진심으로 다 하는 사람을 이길 순 없나? (장난?인가? 반쯤은 진심어린 투로 중얼거린다. 네 허리춤에 제 팔을 두르더니 철제문을 대강 흝어본다.)

 

 

슌도 쥰페이:이길 수 있어. 나는 너한테 더 진심이니까 져줄게. (네 어깨를 안고 함께 철제문으로 간다.)

 

 

동면실 한쪽 벽에 마련 된 이 문은 출입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자물쇠도 없고 비밀번호 입력란도 없습니다.

 

 

이 문은 관리자인식증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한 문인 것 같습니다.

 

 

지구에 남은 마지막 대피소의 관리자는...

 

 

쥰페이죠.

 

 

슌도 쥰페이:(아차) 여긴 출입 금지 구역이다.

 

 

이건 무슨 말일까요?

 

 

슌도 하루오:(마침 빤~히 보던때였다.) 나한테 숨기는게 있어?

 

 

슌도 쥰페이:(살짝 꼬집..) 왜? 있는 것 같아?

 

 

슌도 하루오:아니. 그냥 출입금지라니까 트집잡고 싶었어. (히히)

 

 

슌도 쥰페이:... (한 번 더 꼬집!)

 

대피소에서 사용되었던 내부 통제실인데 출입 할 수 있는 인간들은 모두 죽었거든. 산소도 희박하고 온도도 낮아서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AI 들이 인간의 출입을 모두 통제 해뒀어.

 

 

그렇게 말하며 쥰페이가 자신의 인식증을 가까이 댑니다.

 

 

붉은 불빛이 몇 번 깜박이더니 동면실에 출입했을 때 들었던 목소리와 같은 음성이 들립니다.

 

 

[출입 부적합 대상입니다.]

 

 

쥰페이의 말대로 이곳은 출입할 수 있는 구역이 아닌 듯 합니다.

 

 

슌도 하루오:너까지 못 들어가면 여긴.. 이제 어떻게 하려고 막은걸까? (네 뺨을 가볍게 찌르며 중얼거린다.)

 

 

슌도 쥰페이:그러게... 사람들이 돌아오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게 궁금해? (빤...)

 

 

슌도 하루오:응. 난 궁금한건 잘 못참거든. (당당하게 말한다. 한치의 거짓도 없단듯... 눈만 반짝이며 마주 보더니 실실 웃는다.) 쥰도 궁금하지 않아? ..아님 여기서 일을 더 늘리기 싫은 쪽이려나.

 

 

슌도 쥰페이:(끄응.) 위험성만 없었으면 궁금했을 거야. (...) 구경 다 했으면 이만 나갈까?

 

 

슌도 하루오:그래~ 안 그래도 슬슬 더 추워지는 것 같아서.. 돌아가고 싶었어. (전처럼 찰싹 붙는다.) 쉬고 있으면 내가 먹을 것도 가져다 줄게! (늘 그렇듯 의욕은 많았다.)

 

 

슌도 쥰페이:(철제문을 바라보며 잠깐 미소가 사그라드나 싶었다가 네 이어지는 말에...) 하하. 그러다 전처럼 손 얼면 어쩌려고? 정 하루가 원하면 같이 돌아다닐 수는 있지만...

 

 

곧 동면실 불이 하나 둘 꺼집니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동면 기기.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는 인간들

 

 

쥰페이의 말이 맞을 지도 모릅니다.

 

 

동면을 선택하지 않은 건 현명한 선택이었을 겁니다.

 

 

[동면실을 폐쇄합니다. 10.9.8 …]

 

 

왜냐하면, 문이 닫히기 전 보게 된, 빛 한 점 들지 않는 동면실이

 

 

[3.2.1….]

 

 

너무 외로워보였으니까요.

 

 

슌도 쥰페이:이번에는... 전망대에 가볼까? 추우면 들어가도 좋아. (네 의욕들을 채워주고 싶은 모양...)

 

 

슌도 하루오:(동면실을 돌아보던 것도 잠시 네게 다시 고개가 향한다. 입꼬릴 올려 웃곤) 아니, 같이 갈래. 알잖아? 나 가만히 못있는거!

 

 

슌도 쥰페이:그래, 하루는 그렇지. (네 손을 단단히 잡은 뒤 제 패딩 주머니에 넣고는 걷기 시작한다.)

 

 

동면실에서 나온 쥰페이와 하루오는 함께 대피소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까보다는 바람이 강하지 않아서 대피소 밖을 잠시 걸어도 좋은 날이네요.

 

 

여전히 대피소 밖은 강한 추위가 느껴지지만 시야를 가리는 눈 때문에 앞으로 걸어가지 못하지도,

 

 

세찬 바람 때문에 피부가 얼어 붙을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대피소 밖으로 한 발 내딛습니다.

 

 

눈이 바로 무릎 위까지 올라옵니다.

 

 

발은 푹푹 빠지고 중심도 제대로 잡을 수 없습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갈 때마다 다리와 허리에 잔뜩 힘을 준 채 걸어야 합니다.

 

 

✷　행운or민첩 판정　✷

 

 

슌도 하루오:

운

기준치:	45/22/9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아)

 

 

슌도 쥰페이:(어?)

 

 

아

 

 

말라붙은 나무 위에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뭇가지가 뚝 부러졌습니다.

 

 

지지대를 잃은 눈이 하필 그 아래를 지나가는 하루오 위로 우수수 떨어집니다.

 

 

언젠가 봤던 해변의 모래처럼 부드럽게 부서지는 눈이었지만

 

 

슌도 하루오:엣취!

 

 

덕분에 머리부터 어깨까지 전부 눈으로 덮였습니다.

 

 

슌도 쥰페이:하루!...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던 쥰페이는 놀란 눈을 합니다.

 

 

슌도 쥰페이:...꼭 눈사람 같다.

 

 

솔직히 조금은 웃긴지 눈이 잔뜩 붙은 하루오의 머리카락과 어깨를 털어주면서도 미소를 지우지 않습니다.

 

 

눈이 옷 안으로 파고들자 피부가 차갑습니다.

 

 

슌도 하루오:(잔뜩 묻은 눈을 털어낸다...) 하하! 그치? 특별히 쥰 전용 눈사람인데...

 

따뜻한 허그를... (앗 차가) 좋, 좋아해. (말을 전다.)

 

 

슌도 쥰페이:...하하하! (뜬금없는 전개에 털어주다 크게 웃고 멋쩍게 입을 다문다. 완전히 털어주고는 너를 꽈악 안아준다. 이번에도 오래 안고 있지 않고 금세 품에서 떨어지며) 눈이 더 쌓이기 전에 얼른 가야하니까 다음에 계속... (...) 그래도 조금은 덜 춥지?

 

 

슌도 하루오:응... 갑자기 이렇게 눈더미를 뒤집어 쓸 줄은 몰랐지~ (볼멘소릴 내며 금세 허전해진 품을 바라본다. 조금 아쉽단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조금 더 속도를 내어 걷더니) 진짜 감기들기 전에 다녀와야겠어!

 

 

쥰페이는 하루오의 손을 잡고 걷기 힘든 눈 위를 헤쳐서 다시 걸어 갑니다.

 

 

대피소에서 전망대까지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그건 눈이 쌓이기 전의 일입니다.

 

 

한걸음 앞으로 걸어 가기도 힘든 지금.

 

 

점점 숨이 차오릅니다.

 

 

슌도 쥰페이:...업어줄까? (농...)

 

 

확실히 쥰페이에게 업히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하루오가 원한다면요.

 

 

슌도 하루오:나 무거운데? (그러니까.. 들 수 있겠어? 다운 말이다.)

 

 

슌도 쥰페이:네가 무겁다고?... (흘끔... 저번을 떠올린다. 공주님 안기가 어렵긴 했는데 그건 제 문제였으니...) 업는 건 쉬울지 몰라. 눈사람이 되어도 같이 눈사람 되는 게 낫잖아.

 

 

슌도 하루오:(그럼 냉큼 받아들인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톡톡 네 어깰 두드리는게, 당장 숙여달란 투정이 된다.)

 

 

슌도 쥰페이:(입가가 추위에 얼어 붙어도 너와 함께면 웃을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을 잠깐 하고... 네 투정에 곧장 몸을 숙여준다. 타라는 듯 제 등을 눈짓한다.)

 

 

슌도 하루오:(곧장 네 등위로 올라타더니 익숙하게 어깨쯤엔 팔을 두르고 몸을 기대었다. 시린 체온이 많이 옮겨가면 안 될텐데... ) 어때? 좀 들만한 것 같아?

 

 

슌도 쥰페이:(확실히 가볍다... 이곳에서 할 게 없다 보니 틈틈이 운동을 한 효과를 보는 걸까... 수월하게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응, 에베레스트 산도 오를 수 있을 것 같아. (아니다..) 승차감은 편하신가요?

 

 

슌도 하루오:(아마 에베레스트는 무리겠지... 속으로 생각만 했다. 네 어깨 위로 제 턱을 걸치곤) 하하! 당연하지. 여긴... 이제 내 전용이니까! (만족스런 목소릴 내었다. 힘들면 꼭 내려줘야해! 당부도 잊지 않는다.)

 

 

전망대로 향하는 길목은 좁은 오르막길입니다.

 

 

이 길도 진작 얼음에 덮였어야 할 곳이지만

 

 

쥰페이가 꾸준히 길목을 관리한 덕분에 그나마 아직도 사람이 오갈 수 있는 곳으로 남았습니다.

 

 

잎이라고는 전혀 없는 메마른 나무는 얼어 붙은 채로 빼곡하게 세워져 있고

 

 

그 가운데를 지나갈 때마다 꼭 산에서 조난 당한 기분입니다.

 

 

지구가 멸망하기 전, 사계절 모두 눈에 파묻혀 있는 도시가 있었으니까요.

 

 

지금도 종종 그렇습니다.

 

 

지구의 종말이 꿈처럼 느껴집니다.

 

 

쥰페이 역시 그렇게 생각 하겠죠.

 

 

종말은 너무 빠르게 왔고 갑작스러웠습니다.

 

 

쥰페이와 하루오가 우주선을 타지 못한 건 운이 없어서였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대피소에 도착했고,

 

 

최후까지 지구에서 살아 남아 있습니다.

 

 

운이 나빴다고 할 수 있을까요?

 

 

...

 

 

전망대에 가까이 왔습니다.

 

 

대피소 창문으로 봤을 때 보다 훨씬 더 거대한 크기입니다.

 

 

이정도 크기도 높게만 느껴지는데 전망대의 절반은 눈 속에 파묻힌 상태이니

 

 

과거에는 얼마나 어마어마한 높이였는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낡고 허물어진 전망대 안에는 꼭대기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슌도 쥰페이:하루. 우주선이 우주로 날아갔을 때, 기억해?

 

 

✷　지능 판정　✷

 

 

슌도 하루오: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연히 기억납니다.

 

 

우주선이 지구를 떠나는 장면을 본 게 어디 우리 뿐이던가요?

 

 

2년 전 전망대에 존재하는 사람은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생존자들이 떠나는 우주선을 타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대기권 밖으로 사라지는 우주선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 기억 속에 흐릿하게 자리한 그 모습 그대로일겁니다.

 

 

슌도 하루오:(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닌데... 네게 두른 팔을 조금 더 단단히 휘어 감았다.) 응. 기억하지... 설마하니, 우리가 못 타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 맺어지지 못하고 늘어진다.)

 

 

슌도 쥰페이:(아... 살짝 고개 돌려 네 표정 살피려다 그만둔다.) 으응, 맞아. 좋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

 

우주 상공으로 출발하기 전 우주선을 탄 사람들이 우리들한테 말했잖아.

 

 

내려주고 걸어 올라간 전망대 옥상 문을 열자 눈이 부십니다.

 

 

예전만큼 환하지 않은 빛이지만 여전히 전망대 위를 비추고 있는 태양 때문입니다.

 

 

시야가 익숙해지자 두번째로 눈에 들어 온 건 누구도 밟지 않은 깨끗하고 깊은 눈.

 

 

우주선 발사지와 도착지를 가린 채 언덕처럼 쌓인 눈길.

 

 

무너진 건물과 서서히 파묻혀 가는 문명입니다.

 

 

슌도 쥰페이:...반드시 우리들을 데리러 오겠다고.

 

 

전망대 끝에 올라도 우주선이 발사 되었던 발사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과거 전망대 꼭대기에 훤히 내다 보였던 그곳은 지구에 최후로 남은 우주선 발사지이자, 도착지였습니다.

 

 

정말 인류가 남은 우리를 위해 지구로 되돌아온다면 바로 그곳일겁니다.

 

 

대피소가 이곳에 있고 얼어붙은 채 잠든 인류가 바로 여기 있으며 쥰페이와 하루오가…

 

 

최후로 여기에 남아 있으니까요.

 

 

슌도 쥰페이:(네 손을 잡아 끌어 의자로 향한다. 두 자리 모두 눈을 털고 앉는다.) 있잖아, 하루는 인류가 새로운 행성을 찾았을 거라고 생각해?

 

 

슌도 하루오:(조용히 앉아선 맞잡은 손을 매만진다.) ...으음, 아직 새로운 행성을 찾기엔 이른 시간 같아. (고갤 저었다.) ...그래도 우주는 아주 넓고, 우리의 지식으로 알 수 없는 곳이니까. 행성 한 개쯤은 있지 않을까?

 

 

슌도 쥰페이:...그랬으면 좋겠는데. 하긴, 찾았으면 데리러 오려고 신호가 잡혔겠지. (...) 하지만 인류는 또 다른 행성을 찾을 거야. 지금이 아니더라도 조금 더 먼 미래에는. (맞잡은 채로 손등 엄지로 문지르며) 그러니 반드시 같이 우주로 가자.

 

 

슌도 하루오:(그말에 배시시 웃는다. 불확실한 미래에 확신을 더해주는 말이라... 꾹 마주 잡은 손을 조금 더 힘주어 잡는다.) 응... 지금도, 앞으로도. 어디에 있든... 우린 꼭 함께하는거야. 알았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슌도 쥰페이:그럼, 당연하지. (네 내민 손가락에 제 약지를 건다. 이러니까 꼭... 어릴 때로 돌아간 기분. 엄지로 도장까지 꾸욱 찍었는데도 안 놔준다.) 새로운 행성에 가면 뭐 하고 싶어? 일단 이런 추위에서 벗어났을 테니까...

 

 

슌도 하루오:(도장찍은 손을 살살 흔들어간다. 미래를 상상하는 얼굴은 자연스레 하늘로 향한다. 음- 하는 짧게 침음하는 소리와 함께...) 우선 당장은 이런 무거운 옷이 아니라... 가볍고,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마구 잡이로 걸어다니고 싶어. 맨살로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은 이제... 아주 귀한 것이 됐잖아.

 

 

슌도 쥰페이:너무 익숙해져서 생각도 못 했는데... (네 옷차림을 살핀다. 뚠뚠해... 그런 감상을 속으로 짧게 남기고 웃음을 꾹 내리 참는다.) 날씨를 잃고 난 뒤로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더라. 나는... 하루랑 바다 여행 가고 싶어. 너무 오래 돼서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 거 있지. (과장...) 새 행성에 바다가 없으면 어쩔 수 없지만.

 

 

슌도 하루오:하하! 그럼 강이라도 찾아보면 되겠지. 한여름 처럼 발만 담구고 있어도 좋고... 오랜만에 꽃구경을 가는 것도 좋고.. (매서운 추위가 앗아간 것들을 되찾을 수 있다면... 뭐든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고갤 조금 틀어 내 얼굴을 천천히 흝어본다.) ...근데 난 막연히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아...

 

 

슌도 쥰페이:(네 이야기를 찬찬히 듣고는 고개 끄덕인다. 맞아, 같은 추임새도 넣으면서... 그 다음 말에는 가만 생각에 잠겨 눈을 아래로 깔았다가) ...나도 너랑 있으면 이대로도 좋지만... (멋쩍게 웃으며 다시금 네게로 시선이 향한다. 말은 체 끝내지 못 했고.)

 

 

어느새 희뿌연 해가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슌도 쥰페이:아, 이런. 시간이... (자리에서 일어나 네게 손 뻗고) 돌아가자. 바람이 매서워질 거야.

 

 

슌도 하루오:(접어드는 해를 바라본다. 맺어지지 못한 끝말을 구태여 묻지 않고 네 손을 잡았다.) 응. 이번엔 내가 업어줄까? (부러 장난스런 말을 덧붙이며 걸어나간다.)

 

 

슌도 쥰페이:어? 음? 바람 소리 때문에 잘 안 들렸어. 얼른 가자. (너라면 진짜 가능할 것도 같아 빠르게 돌려 거절하고는 걸음을 맞춰 자리를 옮긴다. 장난스러운 웃음은 덤으로...)

 

 

밤이 찾아 온 지구를 비추는 거라곤 달 뿐입니다.

 

 

돌아가는 길에도 손을 잡습니다.

 

 

전망대 계단을 내려가는 건 올라가는것 보다 훨씬 쉬운 일입니다.

 

 

쥰페이를 따라 전망대 계단을 내려가는 시간이 어쩐지 쌀쌀합니다.

 

 

밤이 찾아오면서 온도도 더 낮아졌기 때문이겠죠.

 

 

그 사실을 쥰페이 역시 알고 있는지 내려가는 걸음이 분주합니다.

 

 

✷　정신력 판정　✷

 

 

슌도 하루오: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추위에 너무 오래 머물렀던 탓인지 미약한 미열이 느껴집니다.

 

 

하긴.

 

 

다른 날에 비해 좋은 날씨였다고는 하지만 인간이 버티기 힘든 온도입니다.

 

 

몽롱하고 까마득한 기분이 느껴지지만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쥰페이에게 조금 더 기대는게 좋겠습니다.

 

 

슌도 하루오:(네쪽으로 몸을 조금 더 기댄다. 걸음이 조금 느려진다.)

 

 

하루오의 상태를 알아차렸는지 쥰페이는 하루오를 두 팔 가득 끌어안습니다.

 

 

그리곤 생생할 정도로 따뜻한 손바닥으로 하루오의 눈을 덮습니다.

 

 

얼굴 주위로 쥰페이의 온도가 퍼집니다.

 

 

슌도 쥰페이:..괜찮아. 조금 쉬고 내일 깨자.

 

 

내가 깨워줄게.

 

 

쥰페이의 말을 마지막으로 하루오의 의식이 꺼집니다.

 

 

...

 

 

...

 

 

 

 

 

 

 

 

 

 

 

✷　듣기 판정　✷

 

 

슌도 하루오:

듣기

기준치:	55/27/11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동면실 상태 이상. 동면실 상태 이상. 동면실 …

 

 

AI 음성이 문 밖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동면실 상태 이상?

 

 

...

 

 

잠을 깨우는 소란스러움에 하루오는 눈을 뜹니다.

 

 

...

 

 

눈을 뜨자 불길한 붉은 빛이 문 밖에서 깜박이고 있습니다.

 

 

대피소 내부에서 무슨 일이 생긴게 분명합니다.

 

 

문을 닫아 놓았지만 복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전부 막을 수는 없습니다.

 

 

✷　이성 (1/1d2) 판정　✷

 

 

슌도 하루오:

SAN Roll

기준치:	80/40/16
굴림:	3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1 감소

 

 

하루오는 이른 아침에 눈을 떴습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지만 쥰페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대피소 밖을 나갈 때 입는 외투와 신발이 없어진 걸 보면 또 전망대로 간 것 같습니다.

 

 

전망대에서는 대피소가 보이지 않을텐데...

 

 

그렇다는건 쥰페이는 동면실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걸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슌도 하루오:(그가 오기만을 기다릴 순 없다... 급하게 몸을 일으켜 동면실로 향한다.)

 

 

마냥 기다리자니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고,

 

 

쥰페이를 찾아 나서려고 해도...

 

 

몸을 움직이자 확연하게 와닿습니다.

 

 

어젯밤 걸렸던 동상이 아직 완벽하게 낫지 않았다는 것을요.

 

 

밤새 눈이 더 내렸으니 눈길을 헤치고 쥰페이에게까지 가는 것은 무리입니다.

 

 

하루오는 동면실로 향하나요?

 

 

슌도 하루오:(그래도... 역시 가보는게 옳지 않나? 시린 손에 입김을 불며 동면실로 향한다.)

 

 

의자에 어제 쥰페이가 입었던 옷이 걸쳐져 있습니다.

 

 

기억을 되살려 옷에서 동면실 출입이 가능한 쥰페이의 관리자인식증을 챙겨 동면실로 이동합니다.

 

 

현관문을 열자 방에서 느꼈던 경고등보다 훨씬 더 밝고 강한 빛이 깜박입니다.

 

 

대피소 전체에 경고를 하고 있는 것 처럼 요란스럽습니다.

 

 

하루오는 빠르게 동면실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들었습니다.

 

 

경고하는 AI의 음성 속에서 동면된 사람들이...

 

 

동면체의 의식 변동이 감지 되었습니다.

 

 

곧 잠에서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정말일까요?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동면이 이렇게 빨리 풀릴 리가 없을 텐데.

 

 

아직 우주선은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니, 다른 행성을 찾았을리도 없습니다.

 

 

우주선이 지구를 떠난 지 고작 3년.

 

 

새 터전을 찾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시간입니다.

 

 

...

 

 

하루오는 대피소 지하로 내려갑니다.

 

 

서늘하고 어둡기만 했던 복도가 네온등이 켜진 것 처럼 환합니다.

 

 

그닥 좋은 의미로 밝아진 건 아닌 것 같지만 가는 길이 무섭지는 않으니 잘 된 일일까요?

 

 

동면실 문은 굳게 닫혀있습니다.

 

 

어제 쥰페이와 다녀 온 이후로 아무도 출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출입할 사람도 없죠.

 

 

슌도 하루오:(챙겨온 출입증으로 문을 열어본다.)

 

 

쥰페이의 관리자인식증을 쥰페이가 했던 것 처럼 문에 갖다 대자 익숙한 음성이 들립니다.

 

 

― 17% … 46% … 79% … 관리자 확인 증명 되었습니다.

 

 

...

 

 

동시에 문이 열립니다.

 

 

동면실 내부는 경고등이 켜진 것 외에 달라진게 없습니다.

 

 

동면캡슐들 중 하나의 캡슐이 붉게 깜빡거립니다.

 

 

'제니(Jennie)'의 캡슐입니다.

 

 

의식이 돌아오고 있는 사람은 제니였던 모양입니다.

 

 

동면 캡슐에서 일어난 단순 이상일까요?

 

 

하루오는 다시 [동면기기 사용 설명서]를 찾아 읽어볼 수 있습니다.

 

 

슌도 하루오:(...차라리 3년만에 정말 다들 돌아온거라면 좋을텐데. 낙관을 상상하며 사용 설명서를 찾아 읽는다.)

 

 

핸드아웃 제공

 

 

슌도 하루오:(그럼.. 지금 제니는 다른 단계로 변화했단 건가? 캡슐의 우측하단을 살펴본다.)

 

 

제니의 정보를 본다면 제니의 의식이 6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 의식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 상태라면 머지 않아 곧 동면에서 풀려날 것 같습니다.

 

 

그 다음은 어떡해야 좋을까요.

 

 

지구는 아무것도 달라진게 없고 오히려 상황은 더 안 좋아지고 있는데도요.

 

 

제니의 동면 캡슐은 ON 버튼에 붉은 빛이 들어와 있고 경고등은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제니의 의식이 돌아왔다는 걸 쥰페이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까요?

 

 

✷　관찰 판정　✷

 

 

슌도 하루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동면 기기 사용 설명서가 놓여 있던 자료 보관함에 [상자] 하나가 깊숙히 놓여져 있는게 보입니다.

 

 

상자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지만 어딘가 오래 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하루오의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상자입니다.

 

 

슌도 하루오:(상자를 열어본다.)

 

 

닫혀 있는 상자는 손쉽게 열립니다.

 

 

상자 안에는...

 

 

여러명의 인식증 카드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카드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에는 제니도 있습니다.

 

 

제니.

 

 

동면 캡슐에 들어가 있는 사람 중 한명이죠.

 

 

그렇다는건 이 인식증 카드는 동면 캡슐에서 동면 하고 있는 저 사람들의 것이군요.

 

 

인식증에는 이름과 국적만 다를 뿐 동일한 정보가 기재되어 있습니다.

 

 

쥰페이의 직급은 대피소 관리인이지만 그들의 직급은 대피소 생존 인류.

 

 

그렇다면...

 

 

왜 하루오의 인식증은 없는거죠?

 

 

생각해보니 이상 할 만도 합니다.

 

 

동면 캡슐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은 쥰페이처럼 관리자가 아닙니다.

 

 

하루오와 같은 대피소 생존 인류입니다.

 

 

인식증을 받은 기억도 없습니다.

 

 

✷　지능 판정　✷

 

 

슌도 하루오: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정말 없나요?

 

 

그들의 인식증을 손에 들고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기억을 더듬습니다.

 

 

아니.

 

 

하루오에게도 인식증이 있었습니다.

 

 

대피소에 들어온 직후 누군가가 하루오에게 주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잊고 있었을만큼 오래 전에 잃어버렸나?

 

 

그렇다면 이 사람들의 인식증으로도 동면실의 철문이 열릴 일은 없겠네요.

 

 

철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계속 되는 경고음에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도 같습니다.

 

 

이 정도로 지속되는 경고라면...

 

 

동면실 내에 있는 AI 기계들이 손을 쓸 만 한데도 그렇습니다.

 

 

정말 저 문 안에 기계들이 있는걸까요?

 

 

한번 더 확인 해 보는건 어떨까요?

 

 

슌도 하루오:... (미덥잖은 상황에 고개만 기울여간다. 자릴 털고 일어서 철문으로 다가간다.)

 

 

하루오는 동면 캡슐에 누워 있는 사람들의 인식증을 들고 동면실에 존재하는 문을 향해 걸어갑니다.

 

 

삐. 삐. 삐...

 

 

여전히 시끄럽게 울리는 경고등이 신경에 거슬리지만 하루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이후 쥰페이를 계속 기다리거나,

 

 

쥰페이를 찾으러 전망대에 가거나 할 뿐이겠죠.

 

 

하루오가 인식증 중 하나를 꺼내 문에 가까이 갖다 대자 예상과는 다른 AI 음성음이 들립니다.

 

 

<출입 가능 대상입니다.>

 

 

<대피소 내부 통제실을 개방합니다. 내부 통제실 진입시 AI의 출입이 제한됩니다. 10. 9. 8. 7 ….>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동면실에 위치한 대피소 내부 통제실은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

 

 

쥰페이가 개방 준비를 하고 있던 AI를 작동 정지 했기 때문입니다.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들리는 쥰페이의 가쁜 숨소리.

 

 

쥰페이 주변에서 느껴지는 외부의 한기.

 

 

머리부터 발끝까지 존재하는 눈을 털어내지도 않고 달려왔는지 쥰페이의 모습은 엉망진창입니다.

 

 

삐. 삐- 삐- 삐―…

 

 

불안함과 조급함이 느껴지는 경고등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립니다.

 

 

슌도 하루오:...쥰페이! 엉망이잖아! (불쑥 걱정이 튀어나온다.)

 

 

슌도 쥰페이:... (숨을 고르며 마른 세수 한 번 했다가)

 

 

붉은 센서에 물들었다가 꺼졌다가.

 

 

다시 물들었다가 꺼졌다가 반복되는 빛이 쥰페이의 얼굴을 연속적으로 비춥니다.

 

 

쥰페이의 눈에 하루오도 마찬가지일겁니다.

 

 

화가 난 걸까요?

 

 

쥰페이의 표정은 큰 미동 없이 잠잠하기만 합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루오를 바라보던 쥰페이는 몇분 뒤 입을 뗍니다.

 

 

슌도 쥰페이:...내 걱정 할 때가 아니야. 다리는, 괜찮아?

 

 

낯설다고 느껴지는 질문입니다.

 

 

쥰페이가 동상이 걸린 하루오의 다리를 걱정하기는 했지만 이런 순간에 나올 말은 아닐겁니다.

 

 

하지만 정말로 쥰페이는 하루오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하루오에게 다가와 하루오가 들고 있는 그들의 인식증 카드를 가져 가는 행동이 매우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로요.

 

 

슌도 하루오:...조금 시린 것 말곤 괜찮아. 이거 봐. (이제는 비어버린 제 손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다리를 가볍게 들어보이고 네게 다가가 묻은 눈들을 털어낸다.) 그보다, 캡슐에 이상이 생긴 것 같은데... 괜찮아? 뭔가 잘 못되진 않았어?

 

 

슌도 쥰페이:(어느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무표정을 덜어내며 안도하는 옅은 미소를 띄운다. 가져간 인식증을 제 주머니에 쑤셔넣고는 센서등을 한 번 쳐다봤다가) 응, 기계가 고장났나 봐. 가끔 이렇게 오류가 생길 때가 있어. (철제문 흘끔) 여기는... 오래 전에 폐쇄 된 곳이야. 들어가면 위험하니까 가지마. (걱정하는 듯 단호한 어투로 얘기하고는...)

 

(뜸) 그보다 하루... 동면실에 문제가 조금 생겼나보네. 무슨 문제인지 알아보러 온 거야? 원인은 알아냈어?

 

 

슌도 하루오:(옅게 웃는 낯에 조금 누그러졌나? 입만 조금 삐죽이다 네 양뺨을 살살 문지른다. 한참 밖을 다녀온 너와 비교하면 더 따뜻했을테다.) ...응,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서... 널 가만히 기다리는게 더 위험할 것 같았거든... 쥰은 어디 다녀온거야? 오늘도 전망대?

 

 

슌도 쥰페이:맞아, 전망대. 늘 똑같지, 뭐... (뺨을 문질러주는 네 손등 위로 제 손을 겹치고 가만히 눈을 맞춘다.) 데려가고 싶었는데 네 발이 괜찮아지지 않은 것 같아서 망설였어. 오늘도 먼저 나와서 미안.

 

 

쥰페이는 잠시 손길에서 벗어나 동면 캡슐을 살피기 시작합니다.

 

 

동면 캡슐을 오래 관리했던 쥰페이라면 무슨 문제인지 바로 알 수 있을겁니다.

 

 

쥰페이는 제니의 동면 캡슐을 살핍니다.

 

 

슌도 하루오:(옆에서 기웃거린다...)

 

 

INF 버튼을 누르자 제니의 고유 정보와 의식 단계가 캡슐 위로 생성됩니다.

 

 

 

제니 ｜ 미국 ｜ 인간 ｜ 현재 의식 단계 6단계

 

 

쥰페이가 캡슐과 프로젝트 화면을 오가기를 몇 번.

 

 

동면실의 경고등이 꺼졌습니다.

 

 

복도에서 깜빡거리고 있던 센서도 사그라든걸 보니 대피소 내부 전체를 밝히던 경고 센서가 제어 된 것 같습니다.

 

 

기계 앞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 쉰 쥰페이는 하루오와 동면 캡슐을 번갈아 봅니다.

 

 

그리곤 이렇게 말합니다.

 

 

슌도 쥰페이:이런... (중얼...)

 

...하루. 동면 캡슐, 멈출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쥰페이는 잘 알고 있을겁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지금 쥰페이 입에서 나온 저 소리는 동면 기기 사용 설명서에 적혀있던 4번째 사항.

 

 

동면체 비활성 의식 유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쥰페이의 표정이 많이 지쳐 보입니다.

 

 

슌도 쥰페이:(아차..) 아니야. 잘못 말했어. 이렇게 말하려던건 아니었는데.

 

 

슌도 하루오:... 쥰페이. 나 봐. (차분한 투로 부른다.)

 

 

슌도 쥰페이:(입을 꾹 다물고 조용히 네게로 고개 돌린다.)

 

 

슌도 하루오:(저보다 더 큰 네 몸을 한껏 끌어안는다. 네 어깨쯤에 얼굴을 문지르기도, 부드러운 손길로 뒷머리를 쓰담기를 몇 번.) ...난 항상 네 편이야. 그만큼 기대줘도 괜찮고... 나눠들어도 괜찮으니까... (말끝을 늘리다. 뺨위로 입을 짓누르다 떨어진다.) ...너무 다 견디려고 하지마. 그럼 나 속상해.

 

 

슌도 쥰페이:(네 위로에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고마운 것 같기도, 미안한 것 같기도 한... 복잡한 마음이 들어 네 허리에 팔을 두르고 그대로 네 어깨에 고개를 떨군다. 이마를 툭 기대 온전한 위안을 받는 듯 싶다가) ...그렇게 말해줘서 다행이야. 덕분에 힘이 났어. (푸슬 웃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들어 네 앞머리를 살살 쓰다듬는다. 피곤한 안색은 어느새 사그라 들었다.)

 

...우선, 나갈까? 춥잖아.

 

 

슌도 하루오:(웃음소리를 따라 작게 미소짓는다. 천천히 몸을 떨어트리던것도 잠시, 제 팔을 비집어 팔짱을 낀 채 어깰 기대었다.) 응... 급하게 뛰어오느라 많이 추웠지? 내가 올라가서 데워줄까? (천천히 자릴 옮긴다.)

 

 

슌도 쥰페이:(자연스레 너를 부축하며 자리를 뜬다.) 하하. 들어가서 방금처럼 하루가 계속 안아만주면 온 몸이 얼어도 괜찮을 것 같아.

 

 

전망대에 다녀왔다는 쥰페이.

 

 

쥰페이는 대체 전망대에서 무엇을 보는걸까요?

 

 

왜 그렇게 매일.

 

 

추운 온도를 감내하고 전망대로 가는 걸까.

 

 

우주선 발사지와 도착지도 보이지 않는 그곳에.

 

 

여태까지 어떤 신호도 오지 않았던...

 

 

그 전망대에.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

 

 

...

 

 

방으로 돌아 온 쥰페이는 하루오에게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금방 정상으로 돌아와 하루오에게 가벼운 먹거리를 건네줍니다.

 

 

슌도 쥰페이:하루, 좋은 소식이 있어.

 

 

좋은 소식?

 

 

그렇게 말하는 쥰페이의 표정은 이전과 다르게 조금 들떠보입니다.

 

 

좋은 소식이라는게 무엇일까요?

 

 

슌도 하루오:좋은 소식? (초콜릿바의 포장지를 뜯으며 묻는다.)

 

 

쥰페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무선 전파기를 꺼냅니다.

 

 

우주 전파를 감지할 수 있는 전파기입니다.

 

 

쥰페이가 전파기 버튼을 누르자

 

 

지지직. 지지직.

 

 

부서지는 전파음 소리가 들립니다.

 

 

슌도 쥰페이:확실하지는 않은데… 지구 근처 우주 상공에 누군가 와 있는것 같아.

 

전망대에 갔을 때 신호가 잡혔거든. 너무 짧은 통신이라 대화는 하지 못했지만 내가 착각한게 아니라면 우리는 곧 지구를 떠날 수 있을 거야.

 

 

슌도 하루오:정말? 축하해! 매일 같이 그렇~게 다녀오더니! (들떠보이는 네게 약간의 투정을 담아 축하를 건네었다. 밝게 웃는 낯으로 네 어깨나 두들겼던가.) 그럼... 이제 다른 사람들도 만날 수 있겠네? 이런 지독한 추위도 곧 안녕이고?

 

 

슌도 쥰페이:(아까와는 퍽 대조되는 신난 얼굴...) 맞아, 그러니까 아까 충동적으로 말한 투정같은 건 잊어줘. 우리를 데리러 온 거라면 동면한 사람들도 같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쥰페이의 말이 맞습니다.

 

 

정말 지구를 떠났던 인류가 우리를 데리러 오기 위해 지구에 돌아온거라면.

 

 

혹은 그들이 아니어도 우리의 존재를 알아봐 준 누군가가 있다면 이 지구를 떠날 수 있을겁니다.

 

 

확실히 좋은 소식이네요.

 

 

이 추위와 고립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건.

 

 

쥰페이의 저런 미소를 너무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슌도 하루오:하하, 그걸 신경 쓴거야? (마냥 귀엽다는듯 네 뺨에 콕 손가락을 찌르며 웃었다. ...이런 웃음은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속으로 생각을 삼키며 네 허리를 감싸 안는다.) 우주선에 오르면 제일 먼저, 너랑 실컷 잠부터 자야겠어.

 

 

슌도 쥰페이:(네 두 뺨에 손을 얹고 눈을 들여다보며) 좋지. 추위 걱정 없이 잠을 자는 건 오랜만일 테니까... 아쉽지는 않아? 지구를 떠나는데. (물론 멸망한 지구이지만..)

 

 

슌도 하루오:(그를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반긴다는듯 눈웃음을 짓더니) 으응... 전혀. 손발 꽁꽁 얼어가며 과로하는 애인이 모처럼 얻는 휴가인데, 아쉬울리가! (부러 가벼운 투로 말했다. 조금 더 어리광 부려도 좋을텐데. 잠깐의 침묵을 유지했다.) ...넌 이제 내 유일한 가족인데, 네가 가는 곳이 내 고향일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전~혀 아쉽지않아.

 

 

슌도 쥰페이:(...) 나도 그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너랑만 함께 한다면 어디든 상관 없어. (뒤이어 눈을 접어 웃고 자연스럽게 네 입에 짧게 제 입을 맞췄다가 떨어진다.) 조금 더 먹을 거야? 아니면 바로 잘까? 잘거면 어제처럼 발 마사지 해줄게.

 

 

슌도 하루오:(제 입매를 매만진다. 절로 새어나는 웃음소리와 함께 몇 번씩이나 가벼운 입맞춤을 이어간다.) 으음... 마사지도 좋은데, 오늘은 뽀뽀가 더 하고 싶기도 하고.. (농조) 같이 안고 자자. 말했지? 올라오면 따뜻하게 데워주겠다고!

 

 

슌도 쥰페이:... (농담이겠지? 조금 아쉬워서 입을 조금 삐죽였다가 이어지는 말에 다시금 미소 머금는다.) 따뜻하게 데워주는 건 내가 되어야 할 텐데... 하루는 아직 발이 차갑잖아. 내가 두 배로 더 따뜻해져볼게. (과연...) 그럼 불 끌까?

 

 

슌도 하루오:응~ 끄고 이리와. 내일도 먼저 나가지 말고.. 나도 꼭 깨워줘! 혼자 기다리긴 싫단말야~ (작게 투덜거리며 이부자리에 몸을 뉘였다. 네가 누울 자리를 만들고 제 옆을 두들기기를 몇 번.)

 

 

슌도 쥰페이:음...~ (네게는 못 당해내겠는지 옆을 차지하고 누워 어깨를 껴안는다. 이불도 꼼꼼하게 덮어주고) 하루가 원하니까... 대신 걷기 힘들면 꼭 말해줘. 백 번도 더 업어줄게. (...)

 

 

슌도 하루오:(따뜻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넌 좀 저를 과보호하는 끼가 있는데... 한편으론 그게 사랑같을 때가 있어서. 슬 웃기나 했다. 농조로 말 할때는 언제고, 네가 저를 안자 손을 더듬어 몇 차례의 입맞춤 후에야 얌전히 누웠다.) 바보 쥰페이. 나보다 힘도 약하면서...~ 사랑해. 좋은 꿈 꿔.

 

 

슌도 쥰페이:(네 가슴께 천천히 토닥여 주다가 눈을 슬 감는다.) 나도 사랑해. 내 꿈 꿔.

 

 

그렇게 소란스러웠던 날이 저물어 갑니다.

 

 

...

 

 

.

 

 

.

 

 

.

 

 

...

 

 

 

 

며칠이 지났습니다.

 

 

쥰페이와 하루오의 사이도 이전과 달라진 게 없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하루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약간의 문제가 있다면 쥰페이가 들었다던 우주 전파는 그 이후 더이상 소식이 없었고

 

 

지구의 추위가 이전과 다르게 더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 뿐 입니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할 것 없이 눈이 몰아쳤습니다.

 

 

이미 멸망된 지구지만 그 사실을 더 확고히 하는 것 처럼.

 

 

다시는 생명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 처럼 지구의 얼음은 자꾸만 두꺼워집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우주전파음을 잡겠다고 전망대로 간 덕분에 쥰페이가 감기 몸살로 열이 올라 앓아 눕게 된 날이.

 

 

몇 번 기침을 하던 쥰페이는 오늘 아침까지도 전망대에 가려고 했지만...

 

 

역시 무리였습니다.

 

 

저런 몸을 하고 이 추위에 대피소 밖을 나갈 수 있을리가 없죠.

 

 

결국 침대에 누워 무선 전파기를 몇 번 만지다가 잠에 들었습니다.

 

 

✷　듣기 판정　✷

 

 

슌도 하루오:

듣기

기준치:	55/27/11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 …!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았나요?

 

 

방 안에서 들린 것 같은데 어디서 흘러나오는 소리인지는 감을 잡지 못하겠습니다.

 

 

그 소리는 아주 짧게 흘렀다가 단호하게 꺼졌습니다.

 

 

원한다면 다시 한 번 들어볼 수 있습니다.

 

 

슌도 하루오:(걱정스레 널 바라보던 차 정신이 퍼뜩 들었다. 다시 집중해서 소리의 방향을 찾는다.)

 

 

✷　듣기 재 판정　✷

 

 

슌도 하루오:

듣기

기준치:	55/27/11
굴림:	11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와

 

 

…

 

 

주파수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지직. 지지직 —.

 

 

어디서 나는 소리지?

 

 

고개를 돌리자 쥰페이가 잠들기 전 가지고 있었던 무선 전파기에서 낯선 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확실합니다.

 

 

무선 전파기에서 전파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습니다.

 

 

높게 오른 열에 시달리던 쥰페이는 전파음을 듣지 못하고 아이처럼 잠들어 있습니다.

 

 

아픈 사람을 깨울 필요는 없겠죠.

 

 

이 전파가 누가 보냈는지.

 

 

어디서 왜 보냈는지 아는게 없습니다.

 

 

슌도 하루오:(혹시나.. 소릴 듣고 네가 더 무리라도 할까봐. 전파기를 들어 무슨 신호가 잡히는지 더 세심히 살펴본다. 깨어나면 들려줄 좋은 소식에 괜스레 마음이 들떴다.)

 

 

아기같다..

 

 

무선 전파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뜹니다.

 

 

<생명 활동 감지 대상이 없습니다.>

 

 

...

 

 

바로 그때.

 

 

무선 전파기 너머에서 모스 부호로 해독된 문자가 재생되어 들렸습니다.

 

 

정말 사람인가?

 

 

쥰페이의 말대로 지구를 떠난 인류가 새로운 행성을 찾은건가?

 

 

전파기에서는 계속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잡음 때문에 그들의 대화를 전부 알아 들을 수는 없지만

 

 

생명 활동 감지 대상이 없다는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리가 없는데.

 

 

우리들은 이곳에 이렇게 살아 있는걸요.

 

 

✷　지능 판정　✷

 

 

슌도 하루오: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그들이 이 지구에 남아있는 생명체를 확인하기 위해 전파를 흘리는 것 처럼.

 

 

우리 역시 우주를 향해 전파를 쏘아 올려야 하는게 아닐까요?

 

 

우리들이 이곳에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요.

 

 

저들이 이 지구를 다시 떠나기 전에.

 

 

전파를 쏘아올릴 수 있는 곳은 이 대피소 안...

 

 

[전파 탐지실]입니다.

 

 

맵을 제공합니다.

 

 

슌도 하루오:(통제구역까지 내려가야하나?)

 

 

대피소 내부에 있던 것을 떠올립니다.

 

 

슌도 하루오:(무선 전파기를 들고 전파 탐지실로 향한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하루오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전파 탐지실로 가서 대피소에 부착 되어 있는 전파 기기를 작동 시키는 것 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쥰페이의 관리자 인식증을 챙겨야 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하루오의 인식증은 없으니까 말이죠.

 

 

인식증까지 챙기고 하루오는 탐지실로 향합니다.

 

 

쥰페이가 그토록 기다렸던 인류가 돌아 왔습니다.

 

 

우리는 우주로 갈 수 있을겁니다.

 

 

...

 

 

...

 

 

<― 21% … 57% … 92% … 관리자 확인 증명 되었습니다.>

 

 

쥰페이의 관리자 인식증으로 전파 탐지실 문을 열었습니다.

 

 

전파 탐지실은 2인이 앉을 자리만 있을 정도로 좁고 기계들이 벽을 가득 잠식하고 있습니다.

 

 

기계 작동법을 알고 있던가요?

 

 

✷　교육 판정　✷

 

 

슌도 하루오:

교육

기준치:	65/32/13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이상하다.. 난 똑똑했는데 왜 모르겠는걸까?)

 

 

몰름..

 

 

...

 

 

잘 기억이 안 나네요.

 

 

누군가에게 작동법을 배운 것 같은데 말이죠.

 

 

그게 그렇게 오래 되었나?

 

 

무전기에서는 여전히 생명 활동 감지 대상이 없다는 소리만 새어 나옵니다.

 

 

마음이 초조해집니다.

 

 

✷　이성 (0/1) 판정　✷

 

 

슌도 하루오:

SAN Roll

기준치:	79/39/15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

 

 

...

 

 

슌도 하루오:(침착... 침착하자. 심호흡을 세 번정도 더 반복하고 초조함을 가라앉히자...)

 

 

기특해

 

 

슌도 하루오:(다시 작동법을 떠올려보자....)

 

 

기억을 더듬던 그때...

 

 

전파 기기 전원을 누르자 곧 불이 들어오더니 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모르고 눌렀는데 이게 맞았나 봅니다.

 

 

슌도 하루오:(ㅎㅎ아니? 알고 누른거다. 뻔뻔해진다...)

 

 

똑똑이

 

 

오래 사용되지 않은 전선에서는 스파크가 튀고 이미 끊어져 버린 전선들도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전파 기기에 부착되어 있는 모든 전원 화면이 켜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죠.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순조롭게 작동되어 가는 것 같으니까요.

 

 

곧 화면에 지구 주위 우주 상공 상태창이 나타납니다.

 

 

초록 화면에서 돌아가고 있는 작은 행성.

 

 

슌도 하루오:(화면을 뚫어져라...)

 

 

얼어붙은 지구 주변으로 작은 물체가 잡힙니다.

 

 

무언가 있습니다.

 

 

전파는 그곳에서 모스부호가 되어 번역되고 있습니다.

 

 

정말...

 

 

정말, 인간이 왔습니다.

 

 

<전파 생성 기기를 작동 시키겠습니까?>

 

 

AI의 음성이 귀를 강하게 때립니다.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우주선이 떠나기 전 이 지구에 아직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슌도 하루오:(기기를 작동 시킨다. 기뻐할 너를 생각하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하루오는 전파 생성 기기를 작동 시킵니다.

 

 

곧 하루오는 아주 무거운 전류를 느낍니다.

 

 

...

 

 

✷　정신력 판정　✷

 

 

슌도 하루오: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5분. 10분. 20분.

 

 

억겁 같은 시간이 흐르는 기분입니다.

 

 

기기 화면에는 아무것도 뜨지 않지만 적어도 지구 근처에 존재하는 우주선이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나.

 

 

하고 느낄 때 드디어 화면에 그들의 규칙적인 전파 음성이 나타납니다.

 

 

 

무선 전파기: [행성에서 보낸 전파를 탐지했다. 생명체가 있으면 대답해.]

 

 

하루오가 쏘아 올린 전파가 그들에게 닿았나 봅니다.

 

 

그들이 답을 보냈으니 우리도 답을 보내야합니다.

 

 

뭐라고 보내는게 좋을까요?

 

 

우선은 이 지구에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

 

 

그것부터 보내는게 좋겠습니다.

 

 

슌도 하루오:여긴 지구.. 생존 인류 다수 있음. 빠른 구조 요망.... (혹여나 그들을 놓칠까봐, 최대한 간결하고 중요한 이야길 담아 보낸다.)

 

 

하루오가 화면에 대답을 생성하자

 

 

기기는 그 대답을 일정한 주파수로 바꾸어 우주로 쏘아올립니다.

 

 

다시 몇 분의 시간이 더 지났습니다.

 

 

화면에는 그들이 보낸 답이 송출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무선 전파기: [다시 확인해 봐. 지난 한달 간 우리들은 지구 주변을 수백번도 더 돌았지만 생명체는 전혀 감지 되지 않았어.]

 

 

…뭐?

 

 

생명체가 감지 되지 않았다니.

 

 

그럴 리가 없습니다.

 

 

지금 이곳에 쥰페이와 하루오가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그 사실이 이렇게도 명백한걸요.

 

 

대체 무엇이 잘못 되었지?

 

 

방황하고 있는 하루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다시 답을 송신했습니다.

 

 

우주에 떠 있을 그들이 보낸 짧은 말.

 

 

 

무선 전파기: [너 인간이 아니구나.]

 

 

✷　이성 (1/1d3+1) 판정　✷

 

 

슌도 하루오:

SAN Roll

기준치:	78/39/15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1 감소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합니다.

 

 

슌도 하루오:뭐...? (당황스러운 답변에 손이 우뚝 멈춘다. ...전파가 나아가던 중 오류가 발생했을까?) 기계에 오류가 생긴거 아닌가? 우린 분명히 인간이 맞아. (답변을 보낸다.)

 

 

 

무선 전파기: [우리들의 기계가 고장난게 아니라면 너에게선 인간의 생체 활동이 전혀 감지 되지 않아. 안타깝게도 우리쪽 기기 오류는 아닌 것 같네. 우리는 네가 전파를 쏘아 올린 그곳 바로 위에 있어. 네가 있는 곳은 아주 오래 된 대피소 같은데 너는 그곳을 관리하는 관리자인가? 우리라고 말하는 거면 다른 이도 존재하고?]

 

 

슌도 하루오:[관리자는 내 남편이야.며칠 간 전파를 잡느라 앓아 누워서 대신해서 연결중인데... 우리 말고도 현재 동면중인 사람들도 있어. 바로 위에 있다면 우주선을 먼저 보내주면 안 돼? 이제 지구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무선 전파기: [대피소 전체를 스캔해봤는데 지하에 동면 캡슐이 6개 있다고 나타나는 군. 하지만 그 외에는 없어. 너를 포함해서 네 남편이라는 존재도 생체 활동이 감지 되지 않아. 내 생각에는 너와 그 존재는 인간이 아니야. 너무 긴 시간동안 작동되어서 그런지 정보 저장에 오류가 생긴 것 같아.]

 

 

 

무선 전파기: [하긴. 400년이면 그럴 만도 하지.]

 

 

슌도 하루오:...? [400년이라니, 무슨 소리야?]

 

 

 

무선 전파기: [몰랐어? 우리는 지구를 버렸던 인류의 후손이야. 정확히는 새로운 행성 ‘알파 566’을 고향으로 가진 인류지. 알파 566도 이제 살기 어려운 땅이 되어 버려서 이전 고향을 탐사하러 온 거나 마찬가지야. 그런데 이곳은 … 선조들이 말했던대로 여전히 최악이군.]

 

 

슌도 하루오:뭐? (믿기 어려운 이야기에 무심코 기기를 내리쳤다. 아파라.. 멈춘 손이 방황한다.)

 

[무슨 소리야? 시간이 그렇게까지 흘렀을리 없는데... ...다른 행성까지 이 지경이 됐다고?]

 

 

 

무선 전파기: [정말 몰랐나보군. 계속 물어도 소용없어. 우리에게 물어봤자 다 지난 과거일 뿐 이야. 그보다 인간으로 주장하는 너는 계속 이곳에 있을 거야? 버려진 행성에?]

 

 

슌도 하루오:[..아니. 나는 살아가야하니까 그럴 순 없어. 네 말이 다 맞다 쳐. 그럼 지금이라도 우릴 구조해줄 순 없는 거야?]

 

 

 

무선 전파기: [안타깝게도 우리 우주선의 탑승 인원은 제한되어 있거든. 우주선의 탑승 인원은 최대 4인이고, 지금은 나와 셴. 그리고 크리스가 있지. ‘알파 566’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지구를 방문하지는 않을 거야. 여긴 말 그대로 우리가 버린 행성이니까.]

 

 

그들이 말합니다.

 

 

지구는 버려졌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지구를 버리고 우주선을 탄 인류는 새로운 지구를 찾았고 그곳을 ‘알파 566’ 이라고 명명했으며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곳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쥰페이는 무엇을 기다린걸까요.

 

 

이미 버린 행성 속에서.

 

 

우리를 생각하지도 않았을 떠나버린 인류에게.

 

 

 

무선 전파기:

 

 [며칠 전에 신호를 처음으로 수신한 존재가 있었지. 그 존재가 네가 말하는 남편인가봐. 그도 우리에게 우리들을 데려 가려고 찾아온게 아니냐고 물었는데 말이야. 그래서 이야기해줬어. 너희가 로봇이든, 정말 400년동안 살아남은 인류든 알파 566으로 데려 가려고 온 건 아니라고 말이지. 자리는 한 자리밖에 없고, 이후에는 다시는 이곳을 방문하지 않을거라고.]

[그랬더니 … 좋아하던데? 데려가야 할 존재가 있다고 해서 기다렸더니 이 행성의 기후가 너무 혹독해서 244시간 동안 통신이 먹통이었어]

 

[내부 통제실에 한 번 가봐. 그곳에서 또 다른 기기 작동 신호가 잡혀.]

 

 

그들의 통신은 잠깐 거기서 끊겼습니다.

 

 

쥰페이의 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요?

 

 

또 어디까지가 거짓일까요?

 

 

슌도 하루오:(복잡한 상황에 머리가 울린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애꿎은 제 머리나 헤집어버리더니... 잠든 너를 뒤로 한 채 내부 통제실로 향한다.)

 

 

...

 

 

 

 

 

 

 

 

내부 통제실을 진입하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무선 전파기로 전파를 보낸 인류의 후손이 내부 통제실을 막고 있던 AI 활동을 제한시켰기 때문입니다.

 

 

동면 중인 제니를 지나쳐 하루오는 내부 통제실 문 앞에 섭니다.

 

 

AI가 하루오를 인지하더니 곧 익숙한 음성이 들립니다.

 

 

 

<출입 부적합 대상입니다.>

 

 

 

<대피소 내부 통제실을 개… 개 …니다. 내부 통제실 진입시 AI의 출입이 제한 되 …. 되 ….됩니다.>

 

 

외부의 힘으로 열린 내부 통제실.

 

 

그리고...

 

 

…

 

 

그제서야 보이는 통제실의 모습.

 

 

얼어붙은 먼지들이 오랜만에 불어오는 외부 불빛을 환영합니다.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추운 온도가 하루오를 감쌉니다.

 

 

 

체력 1 감소

 

 

마치 대피소 밖을 나온 것 처럼 온 몸에 한기가 듭니다.

 

 

금방이라도 또,

 

 

동상에 걸릴 것 같은 기분입니다.

 

 

✷　정신력 판정　✷

 

 

슌도 하루오: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

 

 

내부 통제실은 여태까지 봤던 대피소의 그 어떤 곳 보다 크기가 거대합니다.

 

 

대부분의 기계들이 추위에 얼어 붙었고 뚝뚝 끊어진 전선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습니다.

 

 

하루오가 내부 통제실에 들어서자 깜박 깜박 불길한 경고등이 통제실 내에 가득 켜집니다.

 

 

음성 AI는 똑같은 말만 반복합니다.

 

 

 

< AI의 출입이 제한됩니다. AI의 출입이 제한됩니다. AI의 출입이 제한 … >

 

 

[통제실 화면] [음성 녹음기] [통제실 연구 보관함]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슌도 하루오:(울리는 음성을 무시하고 화면을 먼저 살펴본다.)

 

 

통제실에 있는 수많은 화면 중 단 하나의 프로그램 화면만이 빛을 내고 있습니다.

 

 

동면 캡슐에 잠들어있는 사람과 쥰페이.

 

 

그리고 하루오의 고유 정보가 화면에 인식되고 있습니다.

 

 

익숙한 이름도 보입니다.

 

 

제니.

 

 

제니 ｜ 미국 ｜ 인간 ｜ 동면 중 ｜ 현재 의식 단계 6단계 ｜ 대피소 생존 인류

 

 

그 아래 함께 나열 되어 있는 우리들 역시.

 

 

쥰페이 ｜ 일본 ｜ AI 인공 로봇 ｜ 관리자

 

 

하루오 ｜ 일본 ｜ AI 인공 로봇 ｜대피소 생존 인류 후 개조

 

 

여러분은 인간이 아닙니다.

 

 

우리들에게는 인간이 살아있을 때 발생되는 생체 신호도 감지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이 지구에서 살아남은 생명체가 없다고 생각한거겠죠.

 

 

400년동안 지구에서 동면되지 않은 채 살아가기 위해서...

 

 

인간의 모습을 선택하지 않은 겁니다

 

 

✷　이성 (1/1d3+1) 판정　✷

 

 

슌도 하루오:

SAN Roll

기준치:	77/38/15
굴림:	3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1 감소

 

 

그 외에 살핀 건 없어 보입니다.

 

 

슌도 하루오:(손을 쥐었다 폈다. 로봇이라고? 내가? 돌아가는 사고회로와 그동안의 기억을 되짚어봐도... ...받아들이긴 커녕 현실감이라곤 조금도 없는 이야기라,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연구 보관함을 뒤적인다.)

 

 

기온이 낮은 내부 통제실의 장점은 연구 자료들의 훼손이 덜 하다는 것입니다.

 

 

언제 작성한건지 모를 자료들은 대부분 인간과 로봇의 개조 특성에 대해 기재 되어 있습니다.

 

 

✷　과학 판정　✷

 

 

슌도 하루오:

과학 Roll

기준치:	20/10/4
굴림:	55
판정결과:	실패

 

 

음..

 

 

빽빽하게 저장되어 있는 보관함에서 <인간과 기계의 신체 결합 개조>에 대한 자료를 발견합니다.

 

 

슌도 하루오:(발견한 자료를 읽는다.)

 

 

자료에는 인간의 피부조직과 장기.

 

 

어떻게 정복 인식을 처리하고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자세한 과정이 적혀있습니다.

 

 

적합한 개조를 위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키와 몸무게.

 

 

그리고 성별 정보가 필요했는지 수식은 빽빽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그 정보에 정확히 부합하는 존재가 누구인지는...

 

 

이제 하루오도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 살핀 건 없어 보입니다.

 

 

슌도 하루오:(몇 번이고 마른세수를 이었다. 자료를 내려놓고 음성 녹음기를 확인한다.)

 

 

화면은 빠르게 변해서 지난 400년간 대피소 내부에서 녹음된 음성 화면을 띄웁니다.

 

 

동면에서 깨어날 인류를 위해 저장된 음성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쥰페이입니다.

 

 

그리고 낯선 사람.

 

 

녹음 된 시기는 하루오가 기억하고 있는 지구 멸망의 날.

 

 

그들의 말에 의하면 400년 전 입니다.

 

 

핸드아웃 제공

 

 

...

 

 

— — — 지지직.

 

 

내부 통제실 화면 신호가 불안정합니다.

 

 

흘러나오던 음성이 잠깐 멈췄습니다.

 

 

쥰페이가 무슨 선택을 한 건지 이제는 압니다.

 

 

슌도 하루오:(그래서.. 그 결과가 이거야? 당장 몰아쳐야할 화보다도 허망함이 더 크다. 조금 멍하니 바닥을 응시하다) ...?

 

 

지금은 하루오의 기억으로부터 400년 후 입니다.

 

 

하루오의 기억이 400년 전에 머물러 있는 것도,

 

 

하루오가 아직 자신을 인간이라고 기억하고 있는 것도.

 

 

…

 

 

전부 쥰페이가 그렇게 만들어낸겁니다.

 

 

하루오와 함께 이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면을 선택하는 대신,

 

 

지구로 돌아 올 우주선을 하루 하루 기다리기 위해.

 

 

멸종하지 않기 위해서.

 

 

어쩌면 쥰페이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누구보다 지구를 떠난 인류가 돌아오기를 바랐지만 그 확률이 아주 희박하다는 것 쯤은요.

 

 

인류가 돌아와도 대피소에 있는 모두를 데려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가정들을 말이죠.

 

 

‘하루오.’

 

 

‘… 동면 캡슐, 멈출까?’

 

 

쥰페이가 그렇게 물었던 이유는 그들이 동면에서 깨어나면 절망하기 때문이었을겁니다.

 

 

이제 곧 대피소는 완전히 눈에 파묻힐테고 전망대의 꼭대기는 상공에서 보이지 않게 되겠죠.

 

 

절망하고 싶지 않으니 비활성 의식 유지를 해달라고 하던 사람들.

 

 

쥰페이는 하루오를 떠나 보내기로 결정한겁니다.

 

 

...

 

 

— — — 지지직. 지지직.

 

 

멈춰 있었던 음성 녹음 화면이 다시 작동됩니다.

 

 

음성 녹음 화면에 입력되는 날짜와 연도는 가장 최근입니다.

 

 

동면 캡슐에 이상이 생겨 하루오가 다녀갔던 그 날부터 바로 며칠 전.

 

 

핸드아웃 제공

 

 

전파 수신기가 짧게 울립니다.

 

 

 

무선 전파기:

 

 [지금 전망대 위에 네가 말했던 남편이 있는 것 같아.]

 

슌도 하루오:(퍼뜩 고갤 들었다.) 뭐?! 지금?

 

 

하루오는... 전망대로 가보나요?

 

 

슌도 하루오:('중요한게 없어요.' 그말을 곱씹는다. 매마른 눈가를 문지르고 다급하게 전망대로 향한다.)

 

 

...

 

 

...

 

 

...

 

 

눈이 내립니다.

 

 

하긴.

 

 

눈이 내리는 건 이 지구에서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대피소 밖에는 강한 눈보라가 치고 있습니다.

 

 

그 눈보라를 보고 있으면 이제 모든게 끝인 것 같아요.

 

 

지구에 기대되는 미래 따위는 없고 최후에 남은 인류도 없습니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은 지구가 버려졌다는 것과

 

 

우리 역시 버려진 존재라는 겁니다.

 

 

전망대로 향하는 길에 누군가의 발자국이 찍혀 있습니다.

 

 

세차게 내리는 눈 때문에 새겨진 발자국은 금방 새로운 눈 아래로 덮여 사라지지만

 

 

하루오는 알 수 있습니다.

 

 

쥰페이가 신발도 신지 않고 전망대로 걸어갔다는 것 쯤은...

 

 

짧은 순간이라도 알 수 있어요.

 

 

제대로 옷을 입고 나오지 않아 두 팔과 다리.

 

 

뺨이 얼어 붙을 것 같이 차갑지만 이 통증 역시 인간이 느끼는 실제 감각이 아니겠죠.

 

 

모든게 얼어 붙을 것 같은 이 감정도,

 

 

지금 하루오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요.

 

 

전망대 계단을 한 칸 한 칸 올라갑니다.

 

 

겨울만 계속되는 추운 행성.

 

 

지구.

 

 

 

 

 

계단 끝에 도착하자 꼭대기로 나오는 문은 열려 있습니다.

 

 

열린 문 사이로 눈이 쌓여갑니다.

 

 

밖을 향해 한 발자국 걸어나갑니다.

 

 

그곳에는 쥰페이가 서 있습니다.

 

 

쥰페이 뒤로 겹겹하게 파묻혀 가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옵니다.

 

 

슌도 쥰페이:...미안해.

 

잘못했어.

 

 

쥰페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첫 마디는 사과였습니다.

 

 

하루오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무엇을 봤는지 전부 알고 있는 것 처럼.

 

 

어찌보면 당연한 소리죠.

 

 

하루오는 쥰페이가 만들어낸 존재기도 하니까요.

 

 

쥰페이의 부르튼 발과 멍이 든 것 처럼 푸르고 우울한 색으로 변해버린 다리가 보입니다.

 

 

심한 동상에 걸려 피부가 자신의 색깔을 잃어 버린거지만

 

 

그건 하루오에게도, 쥰페이에게도 상관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죽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아무리 인간의 형태를 닮았어도,

 

 

우리는 인간이 아니니까.

 

 

슌도 하루오:우리가 이렇단걸 다 알면서... (천천히 그에게 다가간다. 시선이 네 발 끝에서 옮겨지지 않는다.) ...왜 그렇게 내 발을 걱정했어?

 

 

슌도 쥰페이:(차마 네 얼굴을 못 보겠는지 시선은 아래로 향한다.) 아무리 죽지 않는 몸이라고 해도, 고통은 같잖아. 네가 아픈 게 눈에 보이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하겠어. (그렇게 말하더니 네 손에 '슌도 하루오'라는 이름이 적힌 인식증을 쥐여준다.)

 

자, 가져가. 내가 가지고 있었어. 네 인식증은 대피소 내에서 이미 인간으로서의 통제 권리를 잃어버려서… 네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그래도 네가 이 지구에서 생존했었던 인간이라는 건 충분히 증명할 수 있을 거야.

 

 

하루오의 얼굴이 새겨진 이 카드는 잃어버렸던 하루오의 인식증입니다.

 

 

400년 전의 물건을 다시 가지게 되었습니다.

 

 

슌도 하루오:(건네받은 인식증을 매만지던 것도 잠시 아무 미련도 없단듯 주머니에 구겨 넣어버린다. 침묵 뒤, 신고 온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네 앞에 놓았다.) ...이거 신어. 발 시리잖아... (흘러나온 목소리가 매인듯한 착각마저 든다.)

 

 

슌도 쥰페이:왜 이걸 나한테 줘. 어차피 네 신발은 나한테 작아서 안 들어가. 난 진짜 괜찮아, 하루... (천천히 무릎을 꿇고 네게 다시 신발을 신겨주려고 팔을 뻗는다. 네 발목을 그러쥐는 손이 조심스럽다. 그렇게 네게 정수리를 보인 채로 말을 잇는다. 목소리 끝이 떨렸던 것도 같다.)

 

사실은, 나 무서워.

 

 

쥰페이의 입에서 짧은 말이 튀어 나옵니다.

 

 

슌도 쥰페이:네가 나한테 실망했어도, 나한테 화가 나도 괜찮다고 생각했어. 아니. 처음에는 괜찮지 않았던 것 같아. 그런데,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내가 느끼는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어. 나는 너랑 뭘 하고 싶은 걸까? 나는… ...네가 뭘 어떻게 해주길 바라고 있는 걸까?

 

(신발을 다시금 신겨줬다고 생각했는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네 기억을 계속 돌리고, 우리가 지구에서 기다렸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난 항상 내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할 수가 없어졌어. 이대로 지구라는 행성 자체가 끝나버릴 때 까지 고립될 것만 같았으니까. 차라리 내가 널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면. 우리가 동면했더라면.

 

…처음부터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슌도 하루오:(한껏 정성스레 벗어두었던 신발은 제 발에 딱 맞는다. 너는 항상 그랬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싶어 내어주어도,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다시 내 손에 쥐여주고 만다. 당장도 그래... 자기가 하고 있는게 사랑인지도 모르고) ...쥰페이 그럼, 지금 네가 생각할때... 이제 이런 나랑 헤어지는건 괜찮을 것 같아?

 

 

슌도 쥰페이:(...) 응, 나는...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 괜찮다고 했지만... 이런 버려진 행성에서 함께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이건, 함께여도 안 괜찮은 게 맞는 거야.

 

 

멸망한 지구에서 우리는 수 세기를 살아 냈습니다.

 

 

살았다고 하는 표현은 이상하네요.

 

 

살아 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루오의 앞에 있는 쥰페이도.

 

 

쥰페이 앞에 있는 하루오도 그렇게 되기 위해 만들어지고 개조 된 인공 로봇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형태는 갖추고 있지만 이미 인간으로서의 정의는 잃었습니다.

 

 

쥰페이는 인간이었던 하루오를 로봇으로 만들었고 스스로도 그렇게 변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는걸까요?

 

 

우리들을… 지구 최후의 인류라고 말해도 괜찮은걸까요?

 

 

인류라고 하기엔 아무것도 없는 우리가?

 

 

쥰페이가 그토록 오래 스스로에게,

 

 

또 하루오에게 물었던 질문을 들어 본 적이 있던가요?

 

 

우리, 언제쯤 우주로 가게 될까?

 

 

이 질문을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더라….

 

 

눈이 몰아 칩니다. 세차게 부는 바람때문에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쥰페이와 하루오가 서 있는 이곳은 너무 춥습니다.

 

 

점점 날도 어두워지고 눈은 순식간에 더 높게 쌓여갑니다.

 

 

슌도 쥰페이:그러니까, …우주로 가. 하루오.

 

지구를 떠나. 제발.

 

 

더 거세진 눈발에 쥰페이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알 수 있습니다.

 

 

쥰페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요.

 

 

그 눈물에는...

 

 

쥰페이의 그 눈물에는 인간의 감정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을까.

 

 

인간이 아닌 하루오가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 문제입니다.

 

 

쥰페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인간이었다고 말해.

 

 

멸종하지 않은 … 지구 최후의 존재라고.

 

 

하루오는 선택해야 합니다.

 

 

슌도 하루오:그래... (어딘가 힘이 빠진 목소리다. 아무리 그래도 얼굴은 보고 싶은데. 조금 더 그에게 다가가본다. 매서운 칼바람이 뺨을 베는 것만 같다. 입김이 새어나오기는 하는걸까? 이젠 잘 모르겠다.) ...전에 여기 있는 책에서 본건데, 일부 학자들이 인간은... 우주 그 자체에서부터 존재한 미약한 생명체부터 진화한걸지도 모른대. (흔들림 없이 정적인 목소리로 말을 뱉어간다. 네 쪽으로 조금씩 손을 뻗어가본다.) ...그럼 우리가, 그동안의 인류사에서 정의할 수 없는 새로운 생명체이지 않을까? 하하... 무려 400년이나 흘렀으니까... 새로운 무언가가 발견된거지! (부러 목소릴 한 톤 올려 전한다. 넌 지금도 울고 있을까?)

 

 

슌도 쥰페이:너는 지금... (이런 상황에서조차 분위기를 띄우려는 모습에 참 너답다는 생각과 동시에 울컥함이 몰려 들어온다. 얼어붙을 것 같은 뺨에는 눈물로 가득 적셔져 있다. 400년이나 살아서 이런 상황이 오면 덤덤할 거라 생각했는데... 네가 다가오자 제 얼굴을 닦아낸다. 이미 들통난 지도 모르는지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한다. 네 뻗은 손이 닿으면 그제서야 멈춘다. 네 장단에 맞추기로 하였는지 울적함은 잠시 뒤로 하고...) ...잘 됐네. 기존 인류가 새로운 인류가 된 거라면... 후손들한테 해줄 이야기는 더 많겠어. 그렇게 말한다는 건... 우주로 간다는 거 맞지?

 

 

슌도 하루오:(닿은 손을 천천히 꼬아가며 눈을 깜빡인다. 이럴때의 너를 보면 거짓말이 능숙한건지, 서툰지 모르겠다. 그냥... 내 앞이 서툰걸지도 모르지. 물음엔 이어지는 말이 없었다. 슬프게 만들고 싶진 않은데... 때로는 꼭 해야할 말이 있다.) ...쥰페이, 네가 우주로 가. 말했지? 헤어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조금, 아니 많이 쓰린 웃음을 지었다.) ...넌 아주 열심히 살아야해. 다른 행성으로 가서... 누구도 무시 못할 엄청난 '생명체'가 돼서, 다신 돌아오지 않을거라 못을 박아버린 지구로. (고저 없는 음성과 함께 시선이 구른다. 네 뺨을 적신 눈물 위를 부드럽게 닦아낸다.) ...언젠가 나를 데리러 와. 나 기다릴 수 있어.

 

너는... 무려 400년을 기다려왔잖아. 난 더 잘 할 자신이 있는데... (입꼬리가 떨린다.) ...어때? 듬직하지 않아? (8백년도 거뜬할 거야! 그런 소릴 농담처럼 덧붙인다.)

 

 

슌도 쥰페이:(네 말을 조용히 듣는다. 그래, 이럴 줄 알았어. 예상은 했다만... 멸망한 뒤로 듣는 네 농담들은 힘이 되었는데 이번 만큼은 아니다. 결국 큰소리를 낸다.) ...하루오! ... ... (화난 음성은 아니다. 속상한 표정을 짓곤 네 두 어깨를 붙잡더니) 그렇게 결론내지마. 나는... 우주로 못 가. 둘 중 하나만 갈 수 있다면 네가 가야해. 나는 알고 있어. 이곳을 떠나면 다시는 너를 못 만난다는 것을. 거짓으로라도 그런 약속은 못 해. 불가능한 걸 너무나도 잘 아니까... (어깨를 붙잡은 손을 옮겨 네 두 손을 살포시 감싼다.)

 

그러니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내가 널 위할 수 있게 해줘. 난 일말이라도 남게 될 이 순간을 위해 400년을 버텼고, 기다렸어. 네가 떠나면 나는 그 무엇도 약속하지 않을 거야. 그게 너한테 더 좋을 테니. 하루는 따뜻함을 그리워 했잖아... 날 보내는 건 그렇게 쉬우면서 날 두고 가는 건 왜 그렇게 어려워 하는 거야.

 

지금 이 순간은 너만 생각해. 나도 너만 생각할게. (의견은 여전히 확고하다.)

 

 

슌도 하루오:...반대로 말하면 지금 떠났을때, 나도 다시는 널 못 본단거야? (감싸진 손을 풀어내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너를 담아내고 싶어서 꿋꿋이 너의 얼굴을 바라본다.) 나까지 내 생각을 하면, 네 생각은... (이제 정말 우리 뿐이다.) 누가 해줄 수 있다고... (한참을 침묵한다.)

 

...우리, 그냥 너랑 나랑 둘이서. 사는게 아주 지긋지긋해질 때 까지... ...여기서 살까?

 

 

슌도 쥰페이:(저 또한 네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제 두 눈동자에 오롯이 너만을 담는다. 언제나 그랬 듯이, 이제는 당연해진 눈보라를 배경으로 두고..) 그러다가 정말 지긋지긋해지면? 네가... 후회하도 하면 어쩌지? 나는 그때 되면,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너를 400년 동안 속여왔는데... 네 의사는 묻지 않고 멋대로 오래 기다리게 했는데도, 화가 안 나? 그래도 여전히 내가 네 고향이야?

 

 

슌도 하루오:...정말 지긋지긋해지면, 아주 먼 옛날에 그랬던 것 처럼 싸워보는 거야. 그동안 네가, 슌도 쥰페이 너를 너무 사랑해와서... 밉다는게 뭔지 잊어버렸거든. 왜? 권태기도 실컷 싸워봐야 더 잘 견딜줄 아는 것 처럼... (버거울땐 꼭 실없는 농담을 하나씩 덧붙이게 된다. 고질병 같은 버릇인데, 나는 이게 썩 나쁘지만은 않다 생각한다. 약간의 들뜬 분위기에도 시린 온기는 변함 없다. 앞으로도 그럴테다.) ...응. 따스하고 밝은 먼 땅보다도, 슌도 쥰페이가 내가 있을 곳이야.

 

 

슌도 쥰페이:이것 참... ...어떡하지. (40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너와 함께한 건 전부 기억하고 싶었지만, 세세한 모든게 기억이 안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봐. 그래도 하나 확실한 건...) 나는 예나 지금이나 널 이길 자신이 없는데. (곧 두 팔로 너를 단단하게 껴안는다. 어떠한 온기도 전할 수 없지만, 닿을 수는 있으니까.) 오랜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나는 너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어. 사실 네가 없는 지구는 상상이 안 가. 아주 조금은, 떠나지 않기를 바랐을 지도 몰라... ...미안해. 그래도 너만 정말 괜찮다면... 내 옆에 남아서 하루의 농담을 계속 들려줘.

 

 

슌도 하루오:(단단하게 끌어안는 팔에 몸을 맡긴다. 당연하게 있을 곳을 찾는듯, 제 팔은 네 허리춤을 위로 감싸 안게 된다.) ...바보! 그래서, 무려 400년간 신혼을 즐긴 기분은 어땠어? (흐흐 웃는 소리와 함께 곧바로 시답잖은 소릴 내뱉는다. 여전히 밖은 시리고, 우리에게 온기라곤 남지 않았겠지만...) ...따뜻하다. (그런 소릴 내뱉는다. 거짓없는 음성이다. 언젠가 온 지구가 얼어붙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이 온기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건 다 네가 있기 때문이라고. 앞으론 이 고백과 같은 이야길 너에게 할 날을 기다려야겠지. 400년보다 더 한 시간이 흘러도 괜찮을거라 자부할 수 있다.)

 

 

슌도 쥰페이:말해 뭐해. 영원함을 잠깐이라도 경험한 것 같아서 좋았어. 너랑 함께라서 더더욱. 아마 앞으로는 영원이 실현될 것 같지만. (네 등에 손을 얹고 천천히 토닥인다. 어쩌면 익숙할 법한 박자로... 느릿하게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그만 자러 갈까? 이번에는 길게 자자. 이제 전망대에 갈 일도 없을 테니까.

 

 

슌도 하루오:하하! 당연하지!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쥰이 좀 쉬었으면 좋겠고.. 더 어리광도 부려주면 좋겠다고... (투덜거리는 투로 말을 이었다. 맨발로 시린 겨울을 견디는 네게는 맞지 않을, 신발 한 짝을 벗어주었다.) ...이번에야말로 이룰 때네. 같이 가자. 집으로...

 

 

슌도 쥰페이:네 바램대로 됐어, 하루. 우리의 집으로 가자.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고 맞지도 않는 신발을 구겨서라도 신는다. 추위를 못 버텨 일 수도 있고, 이것도 네 사랑임을 알아서 일 수도 있고... 품에서 벗어나 손을 잡고서 걸음을 뗀다. 짝짝이로 발자국이 찍히면 웃길 것 같다는... 너와 닮은 유쾌한 생각을 하면서.)

 

 

 

 

 

 

 

 

이대로 우주로 간다고 한 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하루오가 인간이었을 시절 살았던 지구는 이곳에 있고 쥰페이 역시 이곳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행성은 멸망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이곳에 남아있습니다.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로 남았던 여전히 춥습니다.

 

 

겨울을 살아내고 있다는 뜻이겠죠.

 

 

더 이상 전망대 위에서도 보이지 않는 발사지를 매일 바라보며 쥰페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400년동안 쥰페이에게 중요한 존재는 단 하나 뿐이었습니다.

 

 

...

 

 

함께 있을 존재도, 서서히 멸종되어 갈 존재도.

 

 

금방이라도 고장 날 것처럼 펑펑 울고 있는 쥰페이의 얼굴은 인간이 아닌 하루오가 보기에도 조금은 인간 같아 보였습니다.

 

 

시야를 덮는 새하얀 눈.

 

 

언젠가 들었던 쥰페이의 말이 생각납니다.

 

 

괜찮아. 조금 쉬고 내일 깨자.

 

 

내가 깨워줄게.

 

 

내일도 깨워줘야죠.

 

 

우리가 내일 이 행성 위에서 얼어 죽더라도.

 

 

—지지직. —지지직.

 

 

400년을 기다렸던 인류의 전파가 멀어져 갑니다.

 

 

무선 전파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흘러나오지 않을겁니다.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난 우리가 동면을 선택하지 않은 게 잘한 일이라고 믿어.

 

 

그 말을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이 적막한 지구가...

 

 

쥰페이와 하루오마저 없다면 정말 외로울 것 같으니까.

 

 

우리는 진작 멸종되었어야 할 지구 위 생존 인류입니다.

 

 

살아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지구를 버린 과거의 인류보다 지구를 사랑하는…

 

 

지구 최후의 마지막 인류입니다.

 

 

▌ Ending 2. 멸종된 시대에 남은 최후의 존재

 

 

쥰페이 : 로스트

 

 

하루오 : 로스트

 

 

슌도 하루오:(뽀뽀...)

 

 

슌도 쥰페이:(뽀뽀...)